[AI 통역 노트 #01] USB — "안 옮겨져요"에서 시작된 통역
GPT는 친절하게 답했다. 어르신은 못 알아들으셨다. AI가 정답을 줘도 닿지 않는 그 사이를 누가 메우나.
![[AI 통역 노트 #01] USB — "안 옮겨져요"에서 시작된 통역](https://auth.smartact.kr/storage/v1/object/public/images/articles/1782406963442-bulk-121.png)
수업 들어갔는데, 한 어르신이 휴대폰을 내미신다.
"선생님,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. USB를 어떻게 하라는거야?"
화면을 보니, 어르신이 GPT한테 물어보셨다.
USB에 동영상이 안 옮겨진다고.
GPT는 친절하게 답해줬다.
❝ 현재 USB가 FAT32라는 옛날 방식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. exFAT으로 포맷해주시면 됩니다. 윈도우 PC에서 USB를 우클릭해서 [포맷] - 파일 시스템을 exFAT으로 바꾸시고… ❞
나도 한 번 읽어봤다.
맞는 말이다. 다 맞다.
근데 어르신이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하다.





첫째. 한 줄에 모르는 단어가 네 개다.
FAT32, exFAT, 파일 시스템, 포맷.
하나라도 모르면 다음 줄로 못 넘어간다.
둘째. "윈도우 PC에서"라고 하는데,
그 어르신은 PC가 없다.
스마트폰만 쓰신다.
셋째. 가장 중요한 말이 한 줄로 끝났다.
"포맷하면 안에 있던 파일이 다 삭제됩니다."
이 한 줄을 못 보고 [시작] 누르면, 그동안 모은 손주 사진이 다 날아간다.

그래서 옆에 앉아서 한참 설명을 했다.
"어르신, 이거 USB가 옛날에 나온 USB라서요.
손주 결혼식 동영상처럼 큰 파일은 못 담아요.
새 거 하나 사세요. 마트에 가서 'exFAT 되는 거 주세요' 하시면 돼요."
어르신 얼굴이 환해지셨다.
GPT가 5분 동안 설명한 걸,
나는 세 문장으로 끝냈다.
집에 와서 한참 생각했다.
AI는 답을 잘 한다. 진짜 잘 한다.
그런데 어르신은 그 답을 못 알아듣는다.
AI가 정답을 줘도, 그 정답이 어르신한테 닿지를 않는다.
그 사이를 누가 메워주나.
그래서 요즘 내가 하는 일은 이런 거다.
수업에서, 어르신이 자기 진짜 문제를 GPT한테 물어보게 한다.
USB가 안 된다, 카톡 글씨가 작다, 병원 예약 어떻게 잡냐.
그러면 GPT가 답을 준다.
어려운 답을.
그걸 내가 옆에서 통역해드린다.
"GPT가 이렇게 말한 건요, 이런 뜻이에요."
어르신이 "아~" 하신다.
그 "아~" 한 마디 들으려고,
오늘도 노트북을 들고 출강을 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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